[청량사]바람도 쉬어가는 청량사

2007/08/14 14:28
바람도 쉬어가는 청량사...

주차장에서 내려 약 20분에서 30분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다보면 숨이 턱턱 막힐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힘든 산행을 위로라도 해주듯 멋진 산세와 사찰이 모든걸 잊게 만들어 준다.

창건시기 : 신라시대
창건자    : 원효대사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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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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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에는 보물 2개가 전하고있다. 하나는 청량사의 본전인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 지불이고, 다른 하나는 공민왕이 쓴 친필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는 현판이다.
지불이란 종이로 만든 부처상을 말하며, 중앙에 있는 약사여래 보살이 지불로 유일한 것이다.(지금은 금칠을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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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청량사 산사음악회'지금은 갈 수 없지만 언젠간 꼭 갈 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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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찾아가는 길...

2004/04/20 09:24
사찰을 찾아가 사진찍고, 스님과 얘기하고 이곳저곳 둘러보다보면 마음이 편해져 사찰을 또 찾게된다.
특히 절에서나는 그 특유의 향냄새... 날 취하게 한다.
그 마음의 평안이 좋아서 시간날때마다 이곳저곳 많이 찾아다녔었는데...
송광사 또한 그 취함속에서 발견한 또하나의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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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사찰 조계산 송광사

송광사를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이라고 한다.
삼보는 세가지 보물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불보, 법보, 승보가 있다.
불보사찰은 통도사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인하고 있고,
법보사찰로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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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방장인 보성스님이 말하는 공부란...

"마당을 쓸어도 잘 쓸어야지. 그래야 청소가 아니라 빗자루 정진인 거여. 신발 하나도 똑바로
벗어놓는게 마음공부지. 안그래? 발밑을 잘 살피라는 조고각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녀.
자세가 달라져야 마음도 바뀌는 거여." - 경향신문 인터뷰 2007.6.23.

>> 송광사 사이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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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찾아가는 길...

2004/04/19 20:19

엄마랑 벌초가려다가 무작정 달려봤다 ^^
사실 난 채석강이 가고 싶었다.. 엄마의 표정을 봤어야 하는건디.. ㅋㅋㅋ
소문대로 정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일단 변산반돠 관련된 여행기는 다른 카테고리에서 다룰 생각이며 여기선 내소사에
대해서만 알려 줄 생각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鎭西面) 석포리(石浦里)에 있는 사찰이란다...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633년(백제 무왕 34)
창건자 : 혜구두타(惠丘頭陀)

일단 내가 설명을 하는 것 보다는 좋은 자료가 있어서 퍼왔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백제 무왕 34)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내소사는
소래사이다. 1633년(조선 인조 11) 청민(淸旻)이 대웅전(大雄殿:보물 291)을 지었는데,
그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이어서 가히 조선 중기 사찰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1865년(고종 2) 관해(觀海)가 중수하고 만허(萬虛)가
보수한 뒤, 1983년 혜산(慧山)이 중창하여 현재의 가람을 이루었다. 이 밖에도
고려동종(高麗銅鐘:보물 277),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1268), 3층석탑
(전북유형문화재 124), 설선당(說禪堂)과 요사(전북유형문화재 125) 등 여러
문화재가 있으며, 정문에는 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移建)한 연래루(蓮來樓)가
있다.

내소사의 벚꽃들은 아직 봄을 맞기엔 일렀나보다.. 수줍은듯 꽃봉오리를 조심스레 준비
하고 있었다..
오히려 활짝핀 꽃들보다 사이사이에 보이는 꽃들이 더 매력적인 내소사..

그동안 보아왔던 사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정갈하면서도 소박하면서도 귀티나면서도.....
머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치 아주아주 사랑받던 본처가 아닌 첩이라고 해야할까?
음... 표현이 그런가? 나의 느낌은 그랬다 ^^

다소곳이 앉아서 교태스런 미소를 머금은 그런 절... (완존 저의 주관적인 생각임돠)

절의 탱화를 담고 싶었지만 스님들의 눈총이 따가워서 그냥 눈으로만 보고왔습니다
대웅전에 계시던 보살님이 어찌나 설명을 잘해주시던지..... 절마다 계시는 보살님들
덕분에 사찰의 유래도 알게되고 자꾸 사찰을 찾게 됩니다  


몰랐던 사실을 두가지 정도 알았는데... 내소사에서 "다모"와 "대장금"을 촬영했다는
뒷소문을 듣게 되었답니다 ^^
이쁜 사찰은 드라마에도 출연을 하는군요..

들어가는 입구에 쭉쭉 뻗은 나무들과 꽃나무들..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옆에계신 나의 어머니때문에 더욱 그렇게 되는걸지도..
소녀마냥 너무너무 즐거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또다른곳의 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내소사..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한번씩 찾아가 보고 싶은 절입니다
아마도 올 여름을 그곳에서 맞이할 것 같습니다 ....

내소사의 유래에 관하여, 일설에는 중국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와서
세웠기 때문에 '내소(來蘇)'라 하였다고도 하나 이는 와전된 것이며, 원래는 '
소래사(蘇來寺)'였음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고, 최자
(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도 고려 인종 때 정지상(鄭知常)이 지은 〈제변산
소래사(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기록되어 있다. 또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일기
(南行日記)》에도 '소래사'라 하였는데, 이것이 언제 '내소사'로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부속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이 문화재보호구역(전북기념물 78)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一柱門)부터
천왕문(天王門)에 걸쳐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觀音峰:433m) 아래 있는데, 관음봉을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보통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기도 한다.



MBC 기획특집 미니시리즈 다모(茶母)

방송기간 : 2003-07-28 ~ 2003-09-09
방송일시 : 월,화 밤9시55분

기운이 없어보이는 채옥(하지원),
그녀가 치료받았던 곳..
윤(이서진)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온 이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이곳 <내소사>이다.

MBC 특별 기획 드라마 대장금(大長今)

보모상궁의 수발을 위해 장금(이영애)이가 있는 곳. 올게쌀을 발견하고 좋아하던 장금이..
산사일각에서 장금과 정호(지진희)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금영(홍리나)이 보고 참담해 하는 장면..

바로 <내소사> 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울적한 장금(이영애)이의 마음을 달래 주던 바다..
정호(지진희)와 덕구(임현식)랑 바닷물 속에 빠져 덩실덩실 춤을 추던 노을진 바다풍경이 아름다웠던 곳..
금영(홍리나)이 혼자 거닐던 바닷가..
이곳은 인근지역에 있는 <변산해수욕장> 이다.

송광사에서...

2004/03/10 07:26
절을 보는 순간..
입이 절로 벌어지는 절.. 규모도 규모지만.. 정말 화려한 절이다..
('송광사 찾아가는 길~' Templ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부처님이 계신 곳.. 내 안식처니라... ^__________^










나 부자되게 해주세요 ~~ 슝슝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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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2004/03/05 21:53
낙안읍성마을을 나와서 호수를 따라 돌아보니 나온 선암사..
조계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선암사...
(조계산의 선암사는 Templ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봄이 오긴 오나보다...
매화가 너무너무 이쁘게 폈다..















갑자기 '햏자'라는 단어로 보인건 왜일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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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찾아가는 길 ~

2003/11/24 22:25
산이 많아서 그런지 해가 빨리 사라진다..
대천해수욕장에서 일몰을 보고싶은 마음에 무량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생각보다 조금 먼곳에 위치하고 있는 무량사...

들어가는 입구에 감나무들이 줄을 서있다





보는순간 마음이 풍요로와 진다고 해야할까?

사실 감이 많이 떨어져서 좀 쌀쌀해 보이기도했지만 ^^

입구에서 한 3분정도 걷다보면 나무들 머리위로 빼꼼 보이는 절이 있다
무량사...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고 그다지 크지도 않고....
오래 되보이는 것들로 가득찬 절..
내가 서있는 곳은 무량사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外山面) 만수산(萬壽山) 남쪽 기슭에 있는 절.

창건시기 : 신라시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고, 여러 차레 중수(重修)하였으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주위의 산림(山林)이 울창하여 거찰(巨刹)의 면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보물 제356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드물게 보는 2층 불전(佛殿)으로 내부는 상 ·하층의 구분이 없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당시의 목조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극락전 내에는 거대한 좌불(坐佛)이 안치되었는데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좌고(坐高)가 16자, 가슴둘레 24자이며 좌우의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보살(大勢至
菩薩)은 각 좌고가 16자에 가슴둘레가 18자이다. 또한 여기에는 석가불화(釋迦佛畵)가
있는데 길이 45자 8치, 폭이 25자 2치나 되는 조선 인조 때의 불화로 기구(機構)가
장대(壯大)하며 묘법(描法)도 뛰어나고 채색도 선명하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보물 제185호로 지정된 5층석탑, 보물 제233호인 석등, 지방문
화재인 당간지주(幢竿支柱), 김시습 부도(金時習浮屠) 등이 있다.





이 절은 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있다가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무량사를 걷다가 보게된 세가족,
나이가 많아보이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 정말 정다워 보였다.
아빠는 가족들의 이쁜모습을 절과함께 담고싶었나보다.. 열심히 손을 놀린다.

갑자기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 손을 붙잡고 남한산성을 그렇게 열심히 다녔었는데.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다..

석가래의 빛바랜 색처럼 나의 추억도 그렇게 되는건 아닌지....
추억이란 단어를 가슴에 새기며 대천해수욕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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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찾아가는 길....

2003/09/12 03:37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花開面)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840년(신라 문성왕 2)
창건자 : 진감선사 최혜소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벗꽃따라 절찾아가는 길....
벗꽃잎이 눈꽃이됀다.  극락으로 가는 길이 이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곳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님의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본사는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1년(722)에 대비(大悲) 및 삼법(三法) 두 화상이 당(唐)나라에서 육조(六曹) 스님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지리산(智異山) 곡설리(谷雪里) 갈화처(葛花處)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범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 절을 지어 옥천사(玉泉寺)라 하고 조사를 봉안하였다 한다.  

이후 문성왕 2년(840)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즉,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진감선사는 차 종자를 가지고 와 이곳 지리산 주변에 심고 대가람으로 중창하니 뒤에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었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으며, 인조 10년, 벽암 스님에 의해 중건(이후에도 법훈·만허·용담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부 경남 일원의 사찰을 총람하는 조계종의 사찰로 25개 본사 중의 하나로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쌍계사로 들어서기 전 나무장승과 큰 바위 두 개가 방문자의 시선을 끌고 있는데, 각각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팡이 끝으로 쓴 글씨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흥미를 끈다.
삼신산 쌍계사'라는 현액이 걸려 있는 화려한 다포집인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문수·보현를 모신 맞배집 금강문이 나온다.



일주문의 현판 '삼신산 쌍계사', '선종 대가람'이라는 글씨는 해강 김규진의 것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천왕문을 지나 좀더 발길을 안으로 들어서면, 팔영루를 돌아 대웅전 앞에 설 수 있다. 일주문, 천왕문, 팔영루, 대웅전, 삼성각 등의 건물들은 모두 일직선상에 가깝게 배치되어있으나,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계속되고, 또한 중간 중간에 다른 건물들이 비대칭적으로 들어서 있어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깊숙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쌍계사는 범패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梵唄)를 만들어냈으며, 오랫동안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팔영루라는 이름도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대웅전 옆으로 한적히 자리잡고 있는 부도비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감선사 부도비(국보 제 47호)이다. 이 부도비는 최치원 선생이 직접 글을 짓고, 글을 써, 문장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대웅전 오른쪽의 명부전 앞 큰 바위에는 마애불이 자리잡고 있다.



바위의 한 면을 사각으로 움푹 파내고 그 안에 여래형의 조상을 두껍게 양각하여 감실 안에 불상을 앉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저렇게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 부처의 은혜를 입은 누군가의 작품일 것이다..

아직 나의 불교지식이 부족한터라 대웅전과 건물 곳곳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담고있는 이야기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 추측하건데 분명 부처와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성당의 십자가의 길' 같은.. 그러한 스토리를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쌍계사는 다른절들에 비해 볼꺼리가 참 많았던 절 같다.
작은 불교 박물관도 있었던 것 같은데.. ^^

야몽생각!!

쌍계사는 들어서는 문부터 겹겹이다. 그 안에서 무얼하려, 무엇을 하려했기에 그리도 많은 문을 만들어
들어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구심과 거부감을 동시에 갖게 하였을까?
자유와 욕망 그리고 억압이라는 세단어가 떠오르는 절... 내게 쌍계사는 그러했다
산속깊은곳에서 그시절 승려들은 속세의 미련과 추억을 신앙심으로 억제하며 스스로를 깨달았을 것이다
존재에 대하여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나....'라는 질문을 끝없이 자신에게 던지며..

쌍계사 곳곳에서 느껴지는 자유와 억압 모든 역사의 흔적에서 난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틀릴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
쌍계사에서 느껴지는 '기'(땅의 기운 등)는 분명 나와 맞지 아니했다. 그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하지만 쌍계사를 찾아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워 다시한번 찾아가보고 싶은 절이다 ^^
벗꽃축제를 하면 찾는 발걸음이 많아 거의 거리 주차장이 됀다. 쌍계사를 계속 찾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동일한 주파수를 갖고 있어 쌍계사를 찾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 야몽생각 끝 ~~

나는 나의 어머니와의 추억을 또하나 만들며 남해로의 여행을 계속 하였다.



*교통정보
  하동시외버스터미널 → 쌍계사 행 버스
  ( 소요시간 : 40분 / 요금 : 1800원 )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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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 찾아가는 길....

2003/09/01 22:19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월계리 추월산(秋月山)에 있는 암자.

지정번호 : 전남문화재자료 제19호
지정연도 :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 산 81-1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정면 5칸, 측면 2칸
분류 : 사찰건축


어머니와 떠난 남해로의 여행..
지도를 펴고 갈 곳을 하나둘씩 정하고 여행 이틀째 찾아간 보리암..
이런길을 어떻게 올라가나.. 하는 걱정을 하며 열심히 올라간곳...
내눈은 그곳에 멈췄다..

보리암 찾아가는 가는 길.... 그곳에....나의 발또한 멈췄다.



보리암 찾아가는 길....


낙락장송과 청정 산죽, 바위 절경이 지키는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해양 기도처로 불릴 만큼
효험이 높은 기도처로 소문난 암자다.



보리암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보광사의 부속암자였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보리암은 금산의 비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있는 사이사이에는 낙락장송과 산죽들이 청정하게 서 있고 산 밑으로는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보리암은 우리 나라 3대 기도도량으로 불릴만큼 효험이 높은 기도처로 소문이 나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역사
1984년 2월 29일 전란남도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보리사라고도 불리는데, 고려 신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 창건하였다. 정유재란으로 불탔고, 1607년(선조 40) 승려 신찬이 중수하였다. 그후 1650년(효종 1) 스님들이 힘을 모아 다시 건립하였다. 현재 보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법당 안에 1694년(숙종 20) 쓰여진 《보리암 중수기》가 전해지는데, 보리암의 창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지눌이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있을 때, 나무로 매를 만들어서 날려 보냈다. 그런데 매가 내려앉자 불좌복전이라 여기고, 이 자리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뒤 이름있는 기도 및 수도처로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건물에 법당인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다. 법당은 규모가 매우 큰 데, 1980년 주지인 진공(眞空)이 신도 묘월화와 법계성 등의 도움을 받아 완공한 것이다. 법당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집이다. 중앙은 전퇴를 두고 마루를 깔았다. 양쪽 협칸은 중방을 높여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둥은 원형이며, 그 위에는 창방과 장여 도리로 연결되고 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쇠서가 달린 초익공식이다.



한편 보리암 바로 아래는 조선 선조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이씨의 순절처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흥양이씨는 왜적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1840년(헌종 6) 담양부사 조철영이 흥양이씨의 순절을 기리는 비문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지금도 이 암벽에는 ‘김충장공 덕령부인흥양이씨만력정유매담양추월산왜적순절처(金忠壯公 德齡夫人興陽李氏萬曆丁酉罵潭陽秋月山倭賊殉節處)’라는 명문이 남아 있다.



보리암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

보리암에 있는 삼층석탑은 신라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오면서 방향을 잃어 버렸는지, 신기하게도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보리암 삼층석탑 앞은 금산의 제1전망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암자 전체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한려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다. 삼층석탑 옆에는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인자한 미소를 품고 서 있다.



보리암에서 보이는 바다와 작은 마을들....
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스며든다
나는 인자한 미소를 품고 서있는 해수관세음보살상에게 기도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

지금 내 옆에 계시는 나의 사랑스런 어머니와 더 많은것을 보고 더 많은것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난 어머니와 아쉬움을 뒤로한채 발걸음을 돌렸다...


험한 산자락을 돌아 누군가의 정성과 믿음없인 짓지 못했을 보리암.. '신앙심'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하기엔 너무 힘들 것 같다..

보리암은 지금도 복원 공사가 한참이다..
언젠가 10년 50년이 지나면 지금도, 복원공사한 보리암도 역사가 됀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면서 그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내가 걸어온 이길에 남겨진 나의 흔적도 역사가 됀다..



이 길이 끝나는 곳
그곳에서 난 또다른 역사를 만들기 위해 계속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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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가는 길~

2003/08/26 23:00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백제 말기
창건자 : 숭제

구비구비 길따라 들어가다 보이는 수덕사..
수덕사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라서 그런지 주차장, 음식점, 도자기 판매점 등 많이 들어와있다..

난 가끔 그런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우리가 느끼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는 역사의 산물도 결국 개인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 돼고 만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 지곤 한다

수덕사는 "배움과 덕성을 닦는 도량" 즉, 선법(禪法)을 사찰의 정체성으로 삼고 사격(寺格)을드높여 온 곳으로, 경허선사, 만공선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선풍을 진작하여 1984년 덕숭총림으로 승격됨으로써 50여개의 말사를 거느린 기존의 교구본사로의 위상에 선원, 강원을 포함한 종합수도장의 역할을 겸비하였다.







수덕사의 문턱을 들어서는 순간 화려하게 단정한 이분들을 볼 수 있다
금새 새옷을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







- 수덕사의 역사 -
수덕사는 사기(寺記)에 따르면 백제 말 숭제(崇濟)가 창건하고, 제30대 왕 무왕(武王) 때 혜현(惠顯)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설하여 이름이 높았으며,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 때 나옹(懶翁:혜근)이 중수하였다. 일설에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지명(智命)이 창건하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시대 제26대 왕 고종(高宗) 2년(1865)에 만공(滿空)이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문화재로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18호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이 밖에 대웅전 양 옆에 승려들의 수도장인 백련당(白蓮堂)과 청련당(靑蓮堂)이 있고, 앞에는 조인정사(祖印精舍)와 3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1,020계단을 따라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만공탑·금선대(金仙臺)·진영각(眞影閣) 등이 있고,
그 위에 만공이 참선도량으로 세운 정혜사(定慧寺)가 있다.

부속 암자로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見性庵)과 비구니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했던 환희대(歡喜臺)가 있으며, 선수암(善修庵)·극락암 등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특히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선 정진하는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설립되어 있다고 있다.







다른 사찰들 처럼 수덕사에도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이야기 하나!!
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바위가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신 성역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심상궁곡인 수덕사에 이 여인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정혜라는 청년은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때부터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바위속으로 사라진 이 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경향각지에 퍼지자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수덕사는 근대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찰로서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이를 더이상 구전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많은 불자들의 심원(心願)에 따라 수덕사에서는 이 성역에 참배 기도하는 이에게 관음의 신통묘용(神通妙用)한 가피(加被)가 얻어지기를 기원하며 근래에 관음상을 봉조하게 되었다












덕숭산 곳곳에 역사의 흔적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날따라 신발이 편치 않아 더 많은 곳을 돌아보지 못한것이 많이 후회됀다.
조만간 또 가서 더 많은것을 보고 올 예정이지만...







난 사찰을 가면 항상 장독대를 찾아본다
절과 함께하고 있는 항아리들... 만약 그자리에 사기그릇이나 냉장고, 혹은 그 어떤 다른 것들이 놓여있다고
상상해보자... .ㅋㅋㅋ
분명 조화롭지 못한 모습일거다
장독대에서도 부처의 은혜가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개인적으로 불교신자 절대 아닙니다^^)
어릴적 보고 자란 장독대와는 다르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항아리들... 빛을받아 더 풍요로워 보이는 듯한
소담한 모습이란...나의 시선을 멈추게한다..






이른아침 등산하기 편한 복장을 하고 가방에는 김밥과 오이 그리고 물한통 들고 덕숭산을 올라가며 수덕사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계속 이야기를 쓰다가 한번정도는 시대별 사찰의 모습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싶다

★ 찾아가는 길
   1) 승용차로 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I.C→국도21호선→온양→예산→ 삽교→덕산→수덕사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해대교→해미I.C→수덕사  
      눈오는 날: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해대교→홍성I.C→갈산→수덕사

   2) 고속버스로 가는 길
       동서울터미널 → 홍성
       (요금:9,700원/2시간 20분소요)
        06:40, 07:50, 09:40, 11:30, 12:50, 14:30, 15:50, 17:40, 19:00  
※ 더 많은 교통편이 있답니다 ^^


가족들 혹은 사진 찍기 좋아하시는 분들 아님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아님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연인끼리
함 찾아가 보시길....
덕숭산 올라가는길이 약간 미끄럽고 힘들어서 손에 손을 잡아줘야 하거든요 ^^
전 혼자가서 많이 힘들었답니다 ㅠ.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당일 코스로 다녀오시기도 좋답니다


☆ 야몽=달생 님의 생각 ~
수덕사 가는 날 난 아주 우울했다
일상에 지친몸을 끌고 아버지 고향에 들렸다가 무작정 찾아간 곳
그곳에서 난 평온이란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돌아왔다
평온함... 내 마음의 평온함은 곧 나를 다시금 나로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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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가는 길....

2003/08/25 06:49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천은사가 위치한 주소다

천은사는 구례읍 북쪽 9km지점, 지리산 일주도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덕운조사와 안도의 승려<스루>가 터를 닦고 지은 절로서
화천양사라 하여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손꼽힌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광해군 2년(1610년)에 혜정선사가 다시 지었
으나 숙종 2년(1676년)에 불에 타버려 그 이듬해 또 절을 지었다가 영조 49년(1773년)
에 화재를 당해, 영조 51년(1775년)에 혜암선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렀다고 한다

많은 사찰들이 그렇듯이 천은사 또한 여러번 다시 지어졌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






여기서 잠깐!!
천은사에 숨어있는 이야기 하나 ~

천은사의 일주문 현판에는 "지라산 천은사"글씨가 석자씩 두줄로 쓰여 있는데. 그 글씨가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지리산 속에 부는 바랍 같기도 하여 길을 끈다.

천은사의 본래 이름은 경내에 이슬처럼 맑은 차가운 샘이 있어 감로사라 했는데. 이 물을
마시면 흐렸던 정신이 맑아진다하여 많은 스님들이 몰려 들어 한 때는 천명이 넘는 스님이
지내기도 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 사찰로 승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으로 불탄 뒤 중건할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기에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하여 조선 숙종 4년(1677년)부터 천은사라 이름을 바꾸
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름을 바꾼 후부터 원인모를 화재가 잦고 재화가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도 절의 수기를 지켜주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 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선 4대 명필의 한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써서 걸었더니 이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 고요
한 시간에는 일주문 현판 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일주문은 절의 귀중한 내력을 담고 있는 셈이다.
                                                                               - 이야기 끝 -

화엄사는 개방적이며 남성다운 느낌이 드는 절이라면 천은사는 무언가..
은밀한 무언가를 가슴속에 품은 절 같다.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절이다..
음... 뭐랄까?
왕의 첩이랄까? 음.. 안맞는 표현일지는 몰라도 난 그런느낌을 받았다.

대놓고 사랑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맘 아파 하지만, 왕이 사랑의 징표를 많이
보내주어 사랑을 키워나가는 그런거 있지않나? 음..
역시 느낌이나 표현력이 많이 딸리는군.. 쩝..







아무튼 화엄사보다는 천은사를 더 좋아한다
가면 맘이 편해진다..







천은사를 가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봄에 가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벗꽃 흐드러지게 핀 천은사란 정말 머라 표현할 수 없을정도다..







사찰/종교성지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역사와 함께 참 많은 수난을 겪은 곳이 많다
난 그 역사속의 모든일들을 느낄 수 있도록 사진에 담고싶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앞으로 계속 하다보면 실력이 늘거라 믿는다 ^^

노고단을 올라가다 보이는 천은사....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아! 깜빡 잊을뻔 했다..
천은사는 탱화가 아주 유명한 절이라고 한다..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화인 보물 1점과 지방문화재 2점이 있다

★ 현지교통
   1) 구례에서 천은사행 직행버스 이용/ 09:40-15:30, 6회/40분 소요
   2) 구례에서 택시이용시 15분 소요


※ 처음 올리는 글이라서 그런지 아직 서툴다... 사실 자료사진이 부족하여 사찰의
   특징을 알려주진 못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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